2013년

[201306 / 변화] You light up my life by 에일레스

에일레스. 2013. 6. 30. 02:23

남자는 매일 술에 절어 살았다. 특수부대 시절 경험했던 잔혹한 일들이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는 옛 동료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우리의 죄를 신이 용서하실까요?" 동료의 대답은 "아니." 였고, 그 역시 거기에 동의했다. 그는 밤마다 혼자 술에 취해 고통스러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머리에 직접 총구를 겨누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

태양처럼 빛나는 한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

 

영화 <맨 온 파이어> 이야기다.

 


맨 온 파이어 (2004)

Man on Fire 
8.3
감독
토니 스콧
출연
덴젤 워싱턴, 다코타 패닝, 마크 안소니, 라다 미첼, 크리스토퍼 월켄
정보
범죄, 액션 | 영국, 멕시코, 미국 | 147 분 | 2004-09-24

 

특수부대 출신인 존 크리시(덴젤 워싱턴)는 과거의 어두운 기억들로 고통받으며 떠돌던 중, 멕시코시티에 사는 옛 동료의 소개로 한 꼬마 소녀의 경호원이 된다. 멕시코인 아빠와 미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 피타(다코타 패닝)가 그 주인공.

 

 

 

 

 

 

 

피타는 크리시에게서 왠지 모를 슬픔을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자신이 끌어안고 자는 곰에게 '크리시 베어'라는 이름을 붙여줄만큼. 피타는 크리시에게 쉴새없이 질문을 퍼부어대며 그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만, 크리시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러던 둘의 사이는 피타의 수영 연습을 크리시가 도와줌으로서 점점 가까워진다. 피타는 크리시와의 훈련을 반복하며 점점 기록을 단축해가고, 마침내 수영 대회에서 우승한다. 크리시는 어느새 잃었던 웃음을 찾고, 피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둘의 행복한 모습은 피타가 괴한들에게 납치되고, 그 과정에서 크리시가 총상을 입고 쓰러지면서 끝이 난다. 크리시가 정신을 차렸을 때, 피타는 납치범과 피타 부모의 돈 거래에 문제가 생김으로서 살해당해버린 상황이었다.

 

이 영화는 피타의 납치를 기준으로 전, 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앞부분은 크리시가 피타와 마음을 열고 친해져가는 내용이 배치되어 있고, 뒷부분은 그렇게 크리시의 인생에 빛을 되찾아준 피타를 위해 그가 잔혹한 복수를 펼치는 내용이다. 즉, 전반부가 설득력이 있어야만 후반부의 잔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영화의 전반부는 유효했다. 피타를 만나기 전까지 크리시는 어둠 속에서 고통받고 술로서 모든 것을 견디는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피타가 그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눈부신 금발과 진짜 새파란 눈동자라는 외모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피타 역을 맡은 타코타 패닝에게서는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크리시에게 빛을 찾아주는 소녀의 느낌 그 자체였다.

 

크리시와 피타의 관계는 어쩌면 연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부녀지간으로 치환되어 보여지기도 한다. 피타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 수녀가 피타 부모님 대신 수영대회에 온 크리시에게 "오늘은 당신이 피타의 아빠예요" 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이 영화에서 피타의 친아빠는 그만큼의 역할을 못하고 있기도 하다. 마치 <테이큰>처럼, 딸(과 같은 존재)을 잃은 아빠(와 같은 존재)는 거침없이 악당과 싸운다.

 

사실 우리나라 영화 <아저씨>가 개봉했을 때, <레옹>과 비교하는 사람이 많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비교되는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 <맨 온 파이어>였다. <아저씨>에서는 '옆집 아저씨'가 소미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 뛰어드는 것이 크게 설득력이 없어보였다. <맨 온 파이어>에서의 덴젤 워싱턴은, 모든 것을 잃었다가 단 하나를 얻었던 한 남자가, 그것을 다시 잃게 되었을 때 벌이는 복수극의 느낌이라 더 잘 와닿았던 것 같다.

 

 

 

이 영화의 결말은 전형적인 액션영화식 엔딩과 다르다. 크리시가 자신에게 빛을 가져다준 그 소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결말은 이 영화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허전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를 그렇게 희생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란 대체 뭘까..

가끔, '인생을 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때가 있다. 지금의 가라앉은, 우울한 나를, 무언가 물건이든 사람이든 혹은 이념같은 것이든, 나를 다시 태어난 것처럼 바꾸게 해준다면, 나는 그것에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그 답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

 

이 영화의 감독은 작년에 세상을 떠난 토니 스코트다. <맨 온 파이어>는 <트루 로맨스>, <더 팬>과 함께 토니 스코트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다. 부디, 저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

 

뭘 말하고 있는 글인지 쓰면서도 나도 모르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