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 / 편] 넌 내 편이지? by 란테곰
언젠가 지나가듯 내게 그깟 공놀이 하나에 그렇게 일희일비할 필요가 있냐고 얘기했던 사람이 있었다. 이겼을 때의 기쁨, 졌을 때의 분함 등등에 나이를 먹을수록 유연하게 대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왜 그걸 못하냐고. 그리 말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선 우선 ‘그깟 공놀이’ 와 ‘야구’ 사이의 어마어마한 갭이 있다는 점부터 설명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 까마득한 과정에 스스로 질려버려 아무 말도 못 했었다. 다만 속으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넌 내 편은 아니라는 거라고 중얼거렸었다. 맨시티가 만화처럼 우승할 적에 운동장 한켠에서 무릎 꿇고 펑펑 울던 배불뚝이 대머리아저씨의 기분을 넌 평생 모를거라며.
우리는 어린 시절서부터 파란 가을 하늘 아래 각자가 파란 띠와 흰 띠를 두르고선 색에 맞게끔 나눠 다양한 종목을 통해 겨루고, 그것을 응원하는 것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경쟁을 배워왔다. 그리고 그 경쟁은 늘 끝이 있었기에 우리 편이 이겼을 때의 기쁨과 성취감, 우리 팀이 졌을 때의 아쉬움과 분함도 함께 배울 수 있었다. (아마도 교육적 의미로는 이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할거라 예상되는) 페어플레이의 당위성은 물론이려니와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을 할 때의 즐거움, 역전승의 짜릿함, 그리고 ‘~~맨’ 으로 대변되는 만화 속 슈퍼 히어로의 모습처럼 언제나 우리 편이 늘 이기는 싸움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비정한 사실까지도.
그런 학창시절을 보내며 자라난 사람들에게 타 국가와의 스포츠 일전에 민감한 국민성이 더해지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리 편 사랑’은 종종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표현된다. 2002년 이후 월드컵 때마다 벌어지는 붉은 옷들의 응원과 함성만 보더라도 알 수 있고, 평소엔 관심도 없던 종목이더라도 그 경기가 올림픽에서의 경기라면 메달 획득을 당연시하거나 그들의 분패에 함께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일이 얼마나 잦은가. 게다가 언제나 우리 편이 이기는 일은 없다고 말은 했지만 만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확률의 결과는 의외로 종종 일어나기 마련인지라 끝까지 우리 편을 응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같은 국민성을 지닌 나라에서 사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붉은 옷을 입고 목청껏 소리 내어 응원했었고, 억울한 판정에 분개했으며, 멋진 플레이에 열광했었다.
대표적인 예를 들기 위해 스포츠로 얘기를 시작했지만, ‘편’이라는 것은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직장에서도 친구들끼리도 유독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로 나와는 상극인 사람도 있으므로. 모두와 잘 지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럴 수는 없고, 그렇기에 좋든 싫든 무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다만 스포츠처럼 누구누구가 우리 편이라고 확실히 드러내놓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과의 친분이 쌓여가고 안 맞는 사람과는 거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내 편 네 편’으로 나뉘는 것은 순식간이다. 모임이 몰락의 길을 걷는 가장 이유가 바로 편갈림임은 모임에 참여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터. 더군다나 이놈은 해결 방도마저 없는 존재라 가급적이면 마주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으련만, 시시비비를 가릴 수가 없는 영역에서 어제의 친우가 오늘은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를 왕왕 만들어내곤 하니 문제다. 나만 하더라도 그렇게 잃은 이가 몇인지 모를 정도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