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 / 3년] 앙트완, 하늘을 사랑한 남자. by 김교주
1940년 , 나치 독일이 프랑스 북부를 점령하고 생 떽쥐베리는 드골 임시 정부에의 불신을 이유로 미국으로의 망명을 결정한다.
그리고 1943년,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집필한 <어린 왕자>가 미국에서 발표되었다. 앙트완의 나이 마흔 넷, 이미 프랑스의 대표적 작가로 자리매김한 후의 일이다.
작가인 동시에 프랑스 공군 대위였던 앙트완은 이 작품 속에 비행사로서의 경험을 녹여낸 것은 물론, 反戰의 메시지와 평화에의 갈구를 심고 있다.
읽는 이의 시각과 정서, 나이와 성별 등 독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성장 소설, 반전 소설, 심지어는 연애 소설로도 읽히는 <어린 왕자>는 시대적 복잡(!)성과 작가 자신의 奇人 성향을 근간으로 하여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 떽쥐베리는 모국어로 <어린 왕자> (원제 Le petit prince)를 집필했지만 정작 이 책이 프랑스에서 발간된 것은 정찰 비행중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어 앙트완이 실종된지 2년, 미국에서의 초판 발행에서는 3년이나 지난 1946년이 되어서였다.
이후 <어린 왕자>는, 세계 각국에서 200여 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결국 생 떽쥐베리 본인은 조국에서 자신의 대표작이 발표되는 것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이 자신의 대표작이 될 거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로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앙트완은 하늘을 죽도록- 이것은 단순한 관용구가 아니다. 그의 하늘에 대한 사랑은 그가 목숨을 잃은 순간이 언제인지를 떠올리면 더욱 분명해진다- 사랑했다. <남방 우편기>, <야간 비행> 같은 많은 작품들이 하늘에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비행 우편 업체에서 일하던 시절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해서 보냈던 5일간의 체험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생 떽쥐베리가 하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모든 주옥같은 작품들을, 그 중에서도 특히나 <어린 왕자>를 만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어린 왕자> 초판 발행 후 3년의 시간이 더 허락되었었더라면, 생 떽쥐베리는 <어린 왕자>가 받는 수많은 찬사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가 누리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지위와 영예를 작가 자신이 함께 나누어 가졌으리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는 천 일의 평안한 삶 대신 비행사로서의 동경을 충족시키는 길을 택했고, 그래서 전설로 남았다. 마치 자신의 어린 왕자가 친구들을 모두 뒤로 하고 사랑하는 꽃을 지켜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길을 택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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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어쨌든 난 이걸로 2012년 마지막 마감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