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01209 / Fantasy] 여유. by 란테곰

란테곰 2012. 9. 30. 20:42

잔뜩 긴장한 얼굴의 남자는 스읍, 하고 남자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허리를 천천히 앞으로 밀어넣었다. 남자에 비해 여유로운 표정으로 상대를 기다리던 여자는 잠깐 얼굴을 찡그렸으나 곧 긴 날숨과 함께 남자의 움직임을 받아들였다. '긴장한 남자' 의 움직임은 금세 빠르고 격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유로운 여자' 는 그런 남자의 저돌적이기만 한 움직임을 귓가의 속삭임 하나로, 손짓 하나 눈짓 하나로 조금씩 달래가며 둘의 호흡을 맞춰나가려 애썼다. 그 리드 덕분에 열정만 가득했던 '긴장한 남자' 의 움직임은 조금씩 여유를 가지게 되어, 둘이 몸으로 나눈 첫 합주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으로 마무리지어졌다.


'긴장한 남자' 는 침대에 드러누워 숨을 헐떡이며 생각했다. 첫 섹스가 끝난 후 남자는 여자에게 무엇을 해야 할까. 입을 맞춰야 하나. 가슴 깊이 안아야 하나. 촌스럽고 초보 티 내더라도 너무 좋았다 얘길 해야 하나. 하지만 어느 쪽이든 자신의 만족감을 제대로 전해줄 수 없을거란 생각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남자는 곧 움찔했다. '여유로운 여자' 가 자신의 몸 곳곳을 어루만지며 입을 맞추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여유로운 여자' 의 간지럽히듯 애태우는 손길과 입술의 감촉과 혀의 짜릿함은 안 그래도 사정이 끝난 후라 잔뜩 예민해진 남자를 괴로웁지만 달콤한 감각의 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여유로운 여자' 의 손과 입의 움직임이 조금씩 잦아들다 결국 몸에서 떨어졌을 때, '긴장한 남자' 는 다행스럽다는 기분과 아쉽다는 기분을 동시에 맛보게 되었다.




긴장한 남자는 '여유로운 여자' 와 그 날 세 번의 섹스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한 남자는 '긴장했던 남자'로 변해갔다. 하지만 긴장한 남자는 그렇게 '긴장했던 남자'가 되었음에도 '여유로운 여자'의 리드에 따라가기도 급급했다. '여유로운 여자' 의 요구는 때론 매우 조심스럽고 부드럽기를 바라면서도 거침없고 저돌적인 '긴장했던 남자' 의 첫 모습을 잃지 않길 갈구했고, '긴장했던 남자' 는 그것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점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여유로운 여자' 는 '긴장했던 남자' 와의 첫 날 섹스에서도 보여주었듯 애프터 플레이를 매우 중요시했다. 언젠가 한 번은 '긴장했던 남자' 가 더운 날 릴레이 섹스 후 바로 일어나 샤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날 '긴장했던 남자' 는 '여유로운 여자' 에게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긴장했던 남자' 는 집에 돌아가던 중 '여유로운 여자' 와의 첫 섹스를 떠올리며 반성을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긴장했던 남자' 가 늘상 그렇게 섹스를 배워가며 한 것은 아니었다. '여유로운 여자' 를 만난 덕분에 '긴장했던 남자'는 섹스를 통해 나누는 감각적인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고, 그 감각적인 즐거움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줄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게 변해갔다. 머리칼을 쓰다듬는 것에서부터 집요하리만큼 끈적한 애무까지를 일련의 흐름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상대의 성감대를 찾기 위해 애쓰고 또 그렇게 찾은 성감대를 적극적으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쏟아지는 자극과 애무는 '여유로운 여자' 를 만족 시키기에 충분했고, 처음 그렇게 성공적인 섹스를 했던 날 '긴장했던 남자' 는 '여유로운 여자' 로부터 온종일 최고의 서비스를 받았다. 




그렇게 반 년, 긴장했던 남자는 '남자' 가 되었다. 하지만 '여유로운 여자' 는 더이상 그 '남자' 와 함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 는 '긴장한 여자' 와 새롭게 만났다. 잔뜩 긴장한 얼굴의 여자는 스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에 비해 여유로운 표정으로 상대를 기다려주던 남자는 곧 천천히 허리를 앞으로 밀어넣었다. 긴장한 여자는 꽤 오랜 시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여유로운 남자는 여자의 반응을 살핌과 동시에 그녀가 그녀의 몸 속에 갑자기 자리잡은 낯선 부피의 질감에 익숙해지길 기다리며 끊임없이 여자의 몸 곳곳을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서두를 필요가 없는 그는 어느덧 '여유로운 남자' 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