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01208 / 바람] 네게로 불어오는 바람은 네 힘으로 이겨내야 하는 거였어. by 김교주

hanaholic 2012. 8. 10. 08:51

바람 이라는 주제를 던져주며 군신이 말했었다.

"너는 wind를 쓸 것 같으니 태화는 cheat를 쓰라고 하고 나는 wish를 생각해봐야지."

하나의 단어가 세 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 한 번, 분명히 wind의 심상을 떠올리고 있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어린왕자

저자
생텍쥐페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7-05-0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이 세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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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린 왕자의 별에 눈부시게 피어난 꽃 한 송이가 이 소년에게 요구한다. 바람막이를 내어 놓으라고, 나는 호랑이는 무섭지 않지만 바람은 정말 견딜 수가 없다고. 

'바람을 싫어하다니 식물에게는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린 왕자는 꽃을 위해 바람막이를 세워준다. 심지어 그는 꽃의 까다로움까지도 감수하면서 그녀(라고 해두자. 아무래도 나는 이성애자에 가깝다)를 수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바로 여기가 어린왕자의 꽃에 대한 지극한 애졍이 표현되는 것과 동시에 이 둘의 갈등이 촉발되는 부분이다. 


남녀가 연인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배려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에서는 그 흐름이 일방적이다. 어린 왕자는 한없이 베풀어야 하고 꽃은 그의 베풂을 받기만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강요한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한데서 자라는 식물이 바람을 두려워한다는 점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식물은 온실에서 자라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을 생각해보라. 모든 식물은 한뎃잠을 자고 비바람과 벌레와 가끔은 호랑이마저(!?) 이겨내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게 '자연스럽고' 그게 '당연하다'. 어린 왕자의 꽃은 이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려 든다. 


이렇게 제멋대로이고 모순 투성이인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심지어는 그 사랑이 첫사랑이었을 어린 왕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겨웠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7월의 글에서 나는 어린 왕자를 나쁜 놈이라며 비난했지만 사실 그건-어린 왕자가 꽃을 떠나버린건- 꽃이 저지른 만행을 생각했을 때 얼마간 이해해줄 여지가 있는 행동이긴 하다. ... 아니야, 그래도 어린 왕자는 나쁜 놈. 


작품에서 바람이란, 사람이, 연인이, 삶을 살아가고 자신들의 연애 생활을 유지해가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고 또 이겨내야 하는 역경과 고난을 의미하고 있는지 모른다. 꽃은 자기 힘으로 이겨냈어야 할 고통들을 어린 왕자에게 대신 막아달라고 투정을 부린 죄로, 혼자 남겨졌던 것인지도. 

그래도 작품 여기저기에서 어린 왕자는 끝까지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고 꽃을 떠나버렸음을 자책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결국에는 엄청난 두려움을 무릅쓰고 꽃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또 다른 이별을 하기를 망설이지 않기까지. 아, 이 자식, 남자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어린 왕자는 퍽 마초적인 연애 소설이다. 여자가 나타났고,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고, 자신을 지켜달라는 여자의 투정을 견디다 못해 떠났으나 결국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되돌아가는 남자의 일대기를 아주 부드럽고 동화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래? 응?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늘어놓고서 키득 웃어본다. 어린 왕자, 바람, 그리고 꽃. 이번 달에도 이렇게 졸문이 서버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