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 / 책임] 우리들 모두는 이토록 모순된 존재 by 김교주
나는 태양과 함께 태어났으며, 호랑이라도 물리칠 수 있는 네 개의 가시를 가지고 있지만, 바람이라면 아주 질색인 꽃.
처음 내가 당신 별에 도착했을 때 난 아무 것도 모르는 풋내기였어. 뭘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내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몰라서 당신이 알고 있던 것처럼 지독히도 심술궂게 굴었지. 그래, 난 그토록 모순된 존재였어.
그런 내가 알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면 그건 바로 내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점이었지. 심지어 나는 당신이 나의 아름다움에 홀렸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 확신 없이 내가 당신을 어떻게 그토록 괴롭힐 수 있었겠어.
솔직히 이야기할게.
꽃들이란 말야. 늘 그런 식이야. 상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상대를 괴롭히지. 너무나도 많이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당신은 말야....
내가 모순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내 모든 행동이 당신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를 떠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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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어린 왕자를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제나... 라는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 나이를 좀 먹고 나서, 그러니까 스물이 넘어서는 항상 이 작품을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해야 맞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어린 왕자는 내게 나쁜 놈이었다.
어린 노무 시키가. 빌어먹을 놈이.
눈치도 없이 지 좋아라하는 여....아니 꽃을 놔두고 어떻게 그렇게 휭하니 가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그냥 지멋대로, 훌쩍, 걍 가고 싶어서!
그래놓고선 뭐가 어째 임마?
꽃들은 그렇게나 모순된 존재거든? 그 속에 숨겨진 애정을 알았어야 하는건데?
난 너무 어려서 그 꽃을 사랑할 줄 몰랐다고?
너 이자식 이리 와라, 누나한테 좀 맞자.
정말로, 어린 왕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단지 그런 이유로 꽃을 떠난 것이었을까에 대해서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답이 나와주는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 데는 스무살에서 다시 서른이 되는 만큼이 걸렸다.
며칠 전, 곰랭이(곰의 배와 호랑이의 등을 가진 분이라는....)와 함께 동대문 역사 문화관 이벤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어린 왕자 특별전을 관람하러 갔었다. 어린 왕자라는 작품 속에서는 끊임 없이 상처의 순환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린 왕자가, 꽃이, 뱀이, 여우가 입고 입히는 상처들을 다시 마주하고 나는 으스스, 몸서리를 쳤다. 누가 나쁜 놈인지 아닌지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나에 대한 연인의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 잔인해지곤 했다. 나를 사랑한다면 이 잔인함을 견뎌보라는 심사였을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고 애정을 확인받는 데에는 더 현명한 방법이 분명히 있음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미련하게 굴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느냐 하면 꼭 그런것 같지도 않다. ... 여전히 나는 지독히 모순된 존재로 남아서 내 연인을,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주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그러나 나는 믿는다. 꼭 나만이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우리들 모두는 다 얼만큼씩은 모순 덩어리일 거라고.
그리고 그 모순이 서로를 상처입히는 주범이라고.
오늘도 여전히 궁금한 것은, 과연 마지막 순간에 꽃과 어린 왕자가 재회를 했을까 하는 점. 상처 입은 꽃이 그를 기다려주고 있었을까, 하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