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 / 물] water of life. by 란테곰
...나치 독일의 유럽 침공에 마지막까지 저항한 영국은 공습과 V2형 로켓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국토는 황폐하고 모든 물자는 바닥을 드러냈는데 그 중에서도 석유, 석탄 등의 에너지는 고갈돼 버렸죠. 그 날 먹을 빵을 구울 연료조차 구하기 힘든 생활... 그러던 상황에서 위스키를 만드는 장인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겨우 찾아온 평화, 어두컴컴한 방공호 안에서 기어나와 보니 눈 앞에는 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그 옆에는 술을 빚을 때 쓰는 눈 녹은 물이 햇빛에 빛나며 흐르고, 전쟁이라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자연만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거기 있었다. 내가 위스키 만드는 장인이었다면 무엇보다 위스키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하지만 보리를 건조시키기 위해서 아무래도 꼭 필요한 석탄이 부족했죠. 네, 스코틀랜드에서는 석탄이 보급되기 전에는 뒷마당에서 간단하게 채취할 수 있는 피트(이탄)을 연료로 했으니까요. 단, 멕켈란은 피노 함유량이 1ppm. 건조에는 석탄을 사용하고 피트는 그저 향을 내기 위해서만 첨가했어요. 하지만 그 해는 석탄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연료로서도 피트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거에요. 위험한 도박이었을거에요. 멕켈란의 전통과는 다른 스타일이니까요.
어째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위스키를 만들었을까.
위스키의 숙성에는 10년, 2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다. 통은 그 동안 계절의 변화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천천히 호흡하면서 바닷바람이며 숲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향기를 빨아들이죠. 그리고 통의 성분. 셰리 통이라면 너츠와 바닐라 향을, 버본 통이라면 캐러멜 같은 풍미를 위스키에 더해갑니다. 어쩌면 통을 열 때 자신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자신들이 빚은 술을 누군가가 열어 맛을 봐줄 것이다. 그것은 아마 기도였을거라 생각합니다. 전쟁이 없는,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이 틀림없이 올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올 것을 굳게 믿고 싶었다. 그건 위스키 뿐만이 아니라... 와인을 증류한 증류주가 브랜디, 원래는 오드비(eau-de-vie)라고 부릅니다. 이 증류 기술은 스코틀랜드에 전해져 스카치 위스키 = 우식 베하(uisge beatha)가 되고, 이윽고 증류 기술은 세계로. 북구에서는 아콰비트(Aquavit)를 낳고, 러시아에서는 이것이 워커가 되고. 이 워커도 러시아어인 지즈네냐 보다(жизненный вода)가 변화한 것입니다. 오드비, 우식 베하, 아콰비트, 지즈네냐 보다. 이 모든 말의 의미는...
텁, 책을 덮고 내 손에 쥐어진 소주잔을 본다. 비록 위에 나열된 다른 물들처럼 제대로 된 증류주도 아니요 이름이 뜻하는 바도 다를지 몰라도, 사람을 대하는 일인지라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스트레스를 풀고 또 내일 하루도 힘내서 살아보자고 다짐하게끔 도와주는 역할로 봤을 적엔 이 역시 오드비, 우식 베하, 아콰비트, 지즈네냐 보다와 같은 의미였다. 벌컥벌컥. 소주잔에 채워졌던 청하 한 잔을 비우고 창 밖을 바라보니 푹푹 찌는 날씨의 기세는 수그러들 기미 없이 우리의 저녁을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갑자기 아프다는 동생을 데리고 급히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 덥고 또 더워 짜증과 걱정이 함께 솟구쳤었다.
어느새 밖에서 일하지 않음 그 자체에 감사할 수 있을 정도의 날씨가 된 것이 새삼 놀라웠다. 두어달 전까지만 해도 덜덜덜 떨면서 잠자리에 들었었건만. 날씨라는 것이 시간과 늘 발을 맞추어 걷다보니 변화 역시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빈 잔에 다시 쪼로로록 술을 채웠다. 신경외과만으로는 부족해 내분비과와 안과, 산부인과 치료까지 병행해야겠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자꾸 귓전을 때렸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는 지나가고 무언가를 열심히 해도 마찬가지로 하루는 흘러가는데, 요즘의 나는 왜 전자의 방식으로 하루 또 하루를 허비하나. 반성 하고 채워진 잔을 비운다. 이 잔 안에 채워진 술은 비록 제대로 증류를 해서 만든 것이 아닌 싸구려 술이지만, 아닌 밤 중에 날벼락과 같은 일을 또 하루 만났던 오늘의 내게 있어서 이 술은 위에 나열된 저들의 이름에 붙은 '생명의 물' 이라는 의미에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동생에게 마시게 할 순 없으니 내가 기원을 담아 대신 마시겠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그렇게, 그렇게 잔을 비웠다.